
동갑내기 커플이 다 그렇듯이...
그동안 이 남자도 알게 모르게 미안한 적이 참 많았습니다.
늘 홀쭉한 지갑에,
그녀의 친구들을 소개받아도 내밀 명함 한 장 없었다는거...
몇 년을 사귀면서도 변변한 선물 한 번 해준 적 없었던 거...
언젠가 부터 밥값은 당연히 그녀가 내는 듯 생각했던 거...
11시가 넘으면 택시비가 무서워서 집까지 데려다주지도 못했던거...
무엇보다 그런 미안한 일들을 점점 미안하지 않게 생각했던 거...
오늘 첫 월급을 받은 남자는...
그래서 단단히 마음을 먹고 나왔습니다.
이따 집에가서 엄마한테 쫓겨나는 한이 있어도
"키워봤자 하나 소용없다."는 이야기를 듣더라도
오늘은 그녀에게 많은 것을 사주고야 말겠다고...
"뭐 갖고 싶은거 없어? 내가 사줄게.
먹고 싶은건? 어디 가고 싶은데 없어? 응? 응?
근데 너 왜 춥게 입었어. 아! 우리 여우털~ 그런거 사러 갈까?
싫어? 어~ 그럼 내복은? 우리 내복 살까? "
여자는 내복은 무슨 내복이냐고
"내가 뭐 엄만가? "
입을 삐죽여 보지만,
한껏 기분이 솟아오르는 남자는
기어이 여자손을 잡고 속옷가게로 들어섭니다.
"너 내복이 얼마나 따뜻한지 모르지?
거기에다가 내복은 우리나라께 최고래잖아.
자 골라봐. 어떤거 살까? 빨간걸로 사줘?"
그런데 그녀 고개를 숙인채
"괜찮아. 괜찮아. "
말 만하더니 갑자기 코 끝으로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립니다.
"야~ 왜그래. 너 왜 갑자기 울어? 내복이 그렇게 싫어?
아니야? 아니면 왜 울지? 야! 너 왜그래 갑자기... 응? "
손목을 끌고 들어간 여자 속옷 가게에서
여자가 펑펑 울어대는 상황.
남자는 당황해서 어쩔줄 모르는데...
그 사이 눈물을 열심히 닦아낸 여자가 겨우 말을 시작합니다.
"실은 나 그동안 너 원망 많이 했거든...
왜 공부를 더 열심히 안할까? 왜 빨리 취직을 안할까?
왜 아르바이트라도 안하나? 너는 왜 맨날 가난할까?
내가 그런 생각도 막 했었다. 너 몰랐지? 미안.... "
여자는 미안해 이까지만 겨우 말하고는 다시 눈물을 뚝뚝..
그 모습에 남자도 그만 머리 끝까지 찌르르 해지며 눈물이 왈칵..
"너도 많이 힘들었구나.. 그런대도 많이 참아줬구나.
내가 앞으로 잘할게 정말로..."
입을 열면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입술을 꼭 다문채 여자의 까만 머리만 자꾸 쓰다듬는
남자의 더 없이 따뜻한 손길이 말을 건대고 있습니다.
첫 월급처럼...
빨간 내복처럼...
언제나 감사하고 따뜻한 그대에게...
사랑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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